지난 편 「쎈 다 풀었으면 다음 책? 넘어가는 기준은 '오답률'입니다」에서
유형서 마지막 단계 오답률로 다음 책을 정하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기준을 통과한 학생이
심화서를 펴기 전에 거쳐야 할 이야기입니다.
기말을 앞두고 겨울방학 책을 고르는 요즘,
이런 말을 꽤 자주 듣습니다.
"유형서는 다 끝냈는데
심화서만 펴면 손이 안 나가요."
성실하게 여기까지 온 학생일수록
이 벽에서 더 당황합니다.
중학교 때는 개념 익히고 어려운 문제집을
그냥 밀어붙여도 실력이 올랐습니다.
문제 수를 늘리면 감이 따라왔거든요.
그래서 고등에서도 같은 방법을 씁니다.
그런데 고등 심화 문제는
교과서 개념에서 바로 출발하지 않습니다.
교과 개념과 문제 사이에
자주 쓰는 정리와 도구 한 층이 더 있어요.
저는 이걸 실전개념이라고 부릅니다.
이 층이 비어 있으면 심화서는
풀어서 느는 책이 아니라
해설을 읽고 고개만 끄덕이는 책이 됩니다.
한 문제에 30분을 쓰고도 남는 게 없는 거죠.
설명하려고 제가 만든 공통수학1 문제입니다.
이차방정식 x² − 3x + 1 = 0 의
두 근을 α, β라 할 때
α⁵ + β⁵의 값은?
한번 직접 풀어 보셔도 좋습니다.
교과 개념 풀이는 근과 계수의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α + β = 3, αβ = 1이니까
α² + β² = 9 − 2 = 7,
α³ + β³ = 27 − 9 = 18을 구하고,
α⁵ + β⁵ = (α² + β²)(α³ + β³) − α²β²(α + β)로
쪼개는 걸 떠올려야 합니다.
7 × 18 − 3 = 123.
틀린 풀이는 아닙니다.
그런데 저 쪼개는 식은
처음 보는 학생이 시험장에서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지수가 7, 8로 올라가면 더 막막해지고요.
실전개념 풀이는 이렇게 갑니다.
α는 근이니까 α² = 3α − 1,
β도 마찬가지로 β² = 3β − 1입니다.
양변에 같은 걸 곱해 가면
다음 값 = 3 × 앞의 값 − 그 앞의 값이 계속 성립합니다.
α⁰ + β⁰ = 2, α + β = 3에서 출발해
앞의 두 수만 보고 한 칸씩 써 내려가면
2, 3, 7, 18, 47, 123. 끝입니다.
당연해요. 근이 만족하는 식으로
차수를 내리는 도구를 하나 갖고 있으니까요.
심화서가 요구하는 건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이런 도구를 꺼내 쓰는 습관입니다.
이 도구를 모르면 심화서 해설이
매번 '기발한 아이디어'로만 보입니다.
실전개념은 따로 책 한 권을 정해 두고 익히면 좋습니다.
마플교과서는 내신 실전개념까지 담은 개념 대사전이고,
실력 수학의 정석은 특목고·자사고 상위권에 많이 권해지는 책입니다.
일반고라면 정석 실력편이 필수는 아닙니다.
심화서는 여러 추천 글을 모아 보면
대략 이런 칸으로 묶입니다.
1. 심화 입구 → 일품, 유형+내신 고쟁이
2. 심화 → 일등급 수학, 블랙라벨, 올림포스 고난도
3. 심화 상단 → 절대등급
4. 최상위 → 플래티넘
같은 칸 안의 순서는 출처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순위가 아니라 같은 결의 묶음으로 보시면 됩니다.
모두 공통수학1판까지는 나와 있는 걸 확인했고,
다른 과목판은 사시기 전에 한 번 더 보세요.
하나 더 붙이자면,
세 권을 동시에 펴지 마세요.
같은 칸에서 한 권만 골라 끝까지 가고,
실전개념 책은 그 옆에 사전처럼 둡니다.
막힌 문제가 나오면 해설보다 먼저
어떤 도구가 필요했는지를 찾아보는 겁니다.
심화서에 별표가 잔뜩인데
해설 옆에 아무 메모가 없다면
읽고 넘어간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틀린 문제 옆에 '쓴 도구' 한 줄이 있는지 봐 주세요.
다음 편에서는 예비고2 — 새 교육과정에서 기출과 EBS 쓰는 법을 다룹니다.
옛 기출 중 그대로 쓸 수 있는 것과
걸러야 할 것을 나눠 보겠습니다.
책 평가는 여러 추천 글에서 공통으로 하는 말을 정리한 것이고, 난이도 순위나 통계가 아닙니다. 예시 문제는 설명을 위해 직접 만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