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다시 읽기 지난 편에서는
1단계 표 한 장에서 합불이 결정되는 구조를 봤습니다.
그 끝에 약속드린 대로 오늘은
수학이 약해서 외고를 고민하는 경우를
숫자로 펼쳐 보겠습니다.
10월이 되면 중3 상담에서 이 말이 부쩍 늘어납니다.
"영어는 괜찮은데, 수학이 약해서
외고를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이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도 "좋습니다"도 아니라
계산서부터 같이 써 보자고 말씀드립니다.
원서접수까지 오늘로 62일,
고교 선택을 굳히는 시기니까요.
외고는 교육과정부터 언어 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국가 교육과정 총론에 정해진 편성 기준이 이렇습니다.
2개 외국어를 포함한 외국어·국제 계열 68학점 이상,
그중 전공 외국어가 60% 이상, 41학점 이상입니다.
영어와 전공어가 강점인 아이라면
이건 분명한 이점입니다.
잘하는 과목을 가장 많이, 가장 깊게 듣게 되니까요.
좋아하는 언어를 3년 동안 파고드는 경험도
일반고에서는 쉽게 얻기 어렵습니다.
여기까지는 수학이 약해서 외고에 가는 선택이
꽤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고등학교 졸업 기준은
교과 174학점에 창의적 체험활동 18학점,
총 192학점입니다.
외고의 외국어·국제 계열 68학점은
교과 174학점의 약 39%예요.
제가 직접 나눠 본 값입니다.
남은 106학점 안에서
국어, 수학, 과학, 한국사를 다 나눠 가져야 합니다.
시간이 구조적으로 '언어' 쪽에 쏠린다는 뜻이고,
수학을 따라잡을 여유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습니다.
외고에 다니는 학생들 수학을 봐 오면서
제가 제일 자주 보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전공어 수행평가 끝나면 수학 할게요."
그런데 수행평가가 끝나면 다음 언어 과제가 와 있고,
수학은 늘 다음 주의 일로 밀립니다.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학교가 그렇게 짜여 있으니
아이 탓이 아니라, 시간표의 문제인 거죠.
그래서 중학교 때 약했던 수학은
고등학교에서 저절로 메워지기보다 벌어지기 쉽습니다.
여기에 5등급제를 겹쳐 보겠습니다.
지금 고2부터는 1등급이 상위 10% 이하입니다.
(예전 9등급제의 1등급은 상위 4%였고요.)
수학 강사답게 직접 세어 보겠습니다.
(수강자 수는 가상, 동석차는 뺀 단순 계산입니다.)
수강자가
360명이면 1등부터 36등까지가 모두 1등급,
200명이면 20등까지가 1등급입니다.
2등급은 상위 34%까지라서
360명 기준이면 37등부터 122등까지가 한 등급이에요.
등급 하나에 들어가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
라는 얘기입니다.
360명 기준으로 9등급제였다면
1등급은 14등 안팎에서 끝났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11등도, 36등도
똑같이 1등급이라고 적힙니다.
등급 이름은 같아도
그 안에 25등 차이가 들어 있는 셈이죠.
그 차이를 결정하는 건 결국
어느 과목에서 몇 점을 더 받았느냐 입니다.
외고에는 영어 잘하는 학생이 모입니다.
"영어로는 다들 비슷해요."
그러면 차이는 다른 과목에서 생기기 쉽고,
그 자리에 수학이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 결론은 "가지 마라"가 아닙니다.
외고는 수학을 내려놓고 가는 선택이 아니다,
이게 제가 드리는 답입니다.
영어가 되고 수학도 버티는 학생은
외고 안에서 오히려 희소해집니다.
그러니 외고를 생각하신다면
중3의 남은 몇 달 수학을 미루지 마세요.
다음 편에서는
외고 3년, 내신은 어디서 갈라지나
를 학년별로 짚어 보겠습니다.
본문의 수강자 수는 설명을 위한 가상의 숫자이며, 학교별 실제 편제는 각 학교 교육과정을 꼭 직접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