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이 이제 2주 남짓 남았습니다.
방학 마지막 상담이 몰리는 시기인데,
올여름에도 제일 많이 들은 말은 이거였습니다.
"개념은 이해했는데,
문제만 보면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특히 언어와 암기에 강한 아이들에게서 이 말을 자주 듣습니다.
외고에 다니거나 문과를 생각하는 학생들이요.
설명을 들으면 정말 잘 알아듣습니다.
개념을 말로 다시 해보라고 하면 저보다 매끄럽게 정리하는 학생도 있어요.
그런데 시험지를 주면 첫 줄에서 손이 멈춥니다.
먼저 하나만 짚고 가겠습니다.
머리가 나빠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이해했다는 '느낌'과 혼자 풀어내는 '능력'은 아예 다른 것입니다.
수영 영상을 백 번 본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팔을 어떻게 젓는지, 숨을 언제 쉬는지 다 압니다.
그런데 몸은 가라앉습니다.
선생님 풀이를 보는 것도 똑같습니다.
잘 정리된 풀이를 눈으로 따라가는 동안,
뇌는 "나도 이 정도는 하겠다"고 판단해 버려요.
이걸 유창성 착각이라고 부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강사인 저한테도 뼈아픈 이야기입니다.
설명이 매끄러운 선생님일수록
이 착각은 더 강하게 만들어집니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는 건,
제 설명이 좋았다는 뜻이지
아이가 풀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에요.
아이가 "이해했다"고 말할 때,
저는 늘 어느 단계를 말하는 건지 확인합니다.
1단계 공식과 정의를 안다
— "판별식이 뭔지는 알아요."
2단계 푸는 법을 안다
— "이런 유형은 이렇게 푸는 거죠."
3단계 언제 쓸지 안다
— "이 문제는 판별식으로 가야겠는데요."
강의를 한 번 들으면 1단계까지는 옵니다.
비슷한 문제를 여러 번 풀면 2단계까지 오고요.
그런데 시험이 묻는 건 오직 3단계 하나뿐입니다.
문과 성향 학생이 유독 답답해하는 지점이 여기예요.
언어로 정리하는 데 능하니까
1단계는 남들보다 빨리,
그리고 아주 그럴듯하게 끝냅니다.
정리 노트도 예쁘고 설명도 잘합니다.
그래서 본인도 부모님도 "개념은 됐다"고 판단해 버리는 거죠.
정작 3단계 훈련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교재를 덮고, 백지에 설명하게 하기
방금 본 개념을 책을 덮은 채로 백지에 써보게 합니다.
말로 혼잣말하듯 설명해도 좋아요.
여기서 막히는 지점이 진짜로 모르는 부분입니다.
읽을 때는 절대 안 보이다가,
손으로 쓰는 순간 정확히 드러납니다.
틀린 문제 앞에서의 순서를 바꾸기
대부분의 학생들은 틀린 문제를 이렇게 다룹니다.
채점하고, 바로 답지를 보고,
"아 이거였네" 하고 넘어가기.
이러면 다음에 또 똑같이 틀립니다.
순서를 이렇게 바꿔보세요.
하나. 답지를 덮고 10분에서 15분은 혼자 버팁니다.
둘. 답을 보기 전에 "나는 어디서 막혔다"를
한 문장으로 적습니다.
셋. 풀이를 이해한 다음,
답지를 덮고 백지에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넷. 3일 뒤, 그리고 1주 뒤에
같은 문제를 다시 풉니다.
이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저는 두 번째를 고릅니다.
"전혀 모르겠다"와 "개념은 아는데 연결이 안 된다"는 완전히 다른 문제거든요.
이걸 문장으로 못 적는 아이는,
사실 자기가 뭘 모르는지를 모르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흔한 조언 하나에는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왜 그런지 끝까지 파고들어라"는 말,
방향은 맞습니다.
다만 개학 2주 전에 이걸 그대로 하면
진도가 멈춰버려요.
특히 파고드는 걸 좋아하는 문과 성향 학생일수록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단원에 '왜'는 세 개만 정해서 파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문제로 확인하는 게 이 시기엔 훨씬 낫습니다.
개념은 아는데 문제가 안 풀려서 답답하다는 건,
사실 좋은 신호입니다.
대충 넘어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남은 2주, 새 문제집을 사기보다
이미 틀린 문제를 백지에 다시 써보는 쪽을 권합니다.
그것만으로도 개학 후 첫 시험 결과는 꽤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