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이 말을 들으면
저는 이제 대충 다음 이야기가 짐작이 갑니다.
"선생님, 학교 시험은 그래도 나오는데
모의고사만 보면 점수가 뚝 떨어져요.
시험 운이 없는 걸까요?"
운은 아닙니다.
두 시험이 서로 다른 걸 물어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특히 외고나 문과 쪽을 보고 온 학생들에게
이 격차가 유난히 크게 벌어집니다.
국어랑 영어는 지문을 자기 말로 요약할 수 있는데,
수학만 유독 그게 안 되는 상태로 여기까지 온 경우가 많거든요.
학교 시험에는 범위가 있습니다.
두 단원, 세 단원 안에서 나오니까
유형을 성실히 돌리면 점수가 나옵니다.
수업 잘 듣고 문제집 두 번 돌린 학생이
90점을 받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모의고사는 범위가 사실상 없습니다.
배운 단원 전체가 뒤섞여 나오고,
심지어 중학교 때 다룬 내용이
문제 풀이과정의 중간에 슬쩍 끼어 있습니다.
그 많은 단원의 유형을 전부 외워두는 건 쉽지않죠.
그래서 학교 시험 성적은 실력의 상한이 아니라,
범위가 좁을 때의 성적일 뿐입니다.
내신은 잘 나오는데 모의고사가 흔들린다면,
그건 재수 없는 게 아니라
외워서 버텨온 구간이 드러난 겁니다.
학생들에게 "이 단원 이해했어?" 하고 물으면
다들 그렇다고 합니다.
당연해요. 수업을 들었고,
설명이 이해됐고, 예제도 풀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요즘 질문을 바꿉니다.
지난주에 배운 거,
나한테 선생님처럼 설명해 봐.
여기서 대부분 3초 안에 표정이 바뀝니다.
용어는 말하는데 그 용어가 왜 필요한지를 못 붙이고,
공식은 쓰는데 어떤 조건에서 쓰는 건지를 못 말해요.
설명하지 못하는 개념은 이해한 게 아니라,
그 개념을 쓴 문제 몇 개를 외워둔 겁니다.
이건 학생을 몰아붙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고,
저 자신을 점검할 때도 똑같이 쓰는 기준입니다.
그래서 제 수업에서는 학생이 말해보는 시간을 꼭 갖습니다.
제가 떠들고 마는 것이 아니라,
1. 제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며,
2. 클리닉 시간에도 개념을 꼭 구두로 물어봅니다.
말로 막히는 지점이 시험지에서 막히는 지점과
거의 정확히 일치하거든요.
여기서 흔한 이야기와 한 발짝 다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개념을 설명할 수 있게 되면 수학이 풀린다는 말,
저는 반만 동의합니다.
설명은 알고 있는 것을 정리해서 꺼내는 일이고,
문제 풀이는 처음 보는 상황에서 무엇부터 세울지 정하는 일이에요.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결국 다른 근육입니다.
개념을 완벽히 설명하는 학생이
낯선 문제 앞에서 손을 못 대는 경우, 저는 꽤 자주 봤습니다.
그래서 설명이 되는 단계까지 왔으면
그 다음엔 훈련을 '하나 더' 붙입니다.
문제를 풀고 나서 답이 맞았는지가 아니라,
왜 하필 그 첫 줄을 세웠는지를 말로 남기게 하는 거예요.
조건 중에 어떤 걸 보고 그 식을 떠올렸는지,
그 한 줄이 없으면 뭐가 막히는지.
이걸 몇 주 쌓으면 낯선 문제를 봤을 때 뒤질 서랍이 생깁니다.
문과 지망 학생에게는 이 훈련이 특히 잘 맞습니다.
애초에 글로 논리를 세우는 데 익숙한 아이들이라,
수학도 말로 풀게 하면 속도가 붙는 경우가 많아요.
여름방학이 이제 3주도 안 남았습니다.
새 문제집을 사기 전에, 1학기에 배운 단원 목록을 펼쳐놓고
하나씩 소리 내어 설명해 보게 해주세요.
설명이 막히는 단원이 2학기 시험에서 무너질 단원입니다.
목록에 표시된 그 단원부터 다시 보는 게,
새 문제집 한 권보다 확실히 남습니다.
남은 방학, 진도보다 말이 되는 수학을 만드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