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식 끝나자마자
상담을 진행한 어머님이
계획표를 하나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 방학 동안
쎈 한 번 더 돌리고,
기출 두 권 풀기로 했어요.
이 정도면 되겠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런 계획표를 볼 때마다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계획이 잘못돼서가 아니에요.
방향이 없어서입니다.
"3회독 했어요", "방학에 두 권 끝냈어요"
하는 학생들, 매년 정말 많이 봅니다.
근데 이상하죠.
그렇게 많이 푼 학생 중에
정작 1등급은 드뭅니다.
왜 그럴까요.
한 권을 다 풀어도
그 내용이 진짜 내 것이 됐는지
확신이 없으니까,
횟수와 권수로 불안을 달래는 겁니다.
특히 여름방학이 위험합니다.
40일이라는 시간이 통째로 주어지니까,
계획이 자꾸 '양'으로 흘러가요.
저는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이번 방학이 끝났을 때,
네가 뭘 못하는지 적힌 종이 한 장이 남아 있니?
제가 학생들한테 방학마다 시키는 게 하나 있습니다.
문제를 풀다 틀리면,
틀린 이유를 종이 한 장에
파트별로 나눠서 적게 합니다.
연산 습관 / 그래프 / 도형 / 조건 해석 이런 식으로요.
예를 들어
분수 계산에서 통분을 놓쳐서 틀렸다?
그건 다시 풀 문제가 아니라,
연산 습관 칸에 "분수 보이면 통분부터"
라고 한 줄 적을 일입니다.
반대로 발상 자체를 몰랐던 문제는 별표를 치고,
며칠 뒤에 깨끗한 종이에 다시 풀어봅니다.
그때도 버벅이면
그 발상을 또 한 줄 적는 거죠.
포인트는 '적는 방식'입니다.
왼쪽에 단서, 오른쪽에 해법을 적고,
오른쪽을 손으로 가리고 스스로 테스트하는 겁니다.
작년 여름에 이걸 시켰던 고2 학생이 있었는데, 개학할 때 이 종이가 딱 넉 장이었어요.
문제집은 한 권 반밖에 못 풀었습니다.
그런데 2학기 중간에서 수학이
4등급에서 2등급이 됐습니다.
남들이 두 번째 회독을 도는 동안,
이 학생은 자기 약점 넉 장을 열 번 넘게 본 거예요.
방학이라고 하루 종일
수학만 붙잡고 있을 필요 없습니다.
대신 푸는 방식을 바꾸세요.
먼저 채점 호흡부터.
몇 장씩 몰아 풀고 저녁에 한꺼번에 채점하는 건,
이게 참 아까운 공부인데요.
한 페이지 풀면 바로 채점하고,
틀린 이유를 그 자리에서 약점 종이로 보내는 게
방학 루틴의 핵심입니다.
막히는 문제가 나오면 바로 해설을 보지 말고,
세 가지만 점검해 보세요.
1. 개념 중에 빼먹은 게 없는지,
2. 문제의 조건을 다 썼는지,
3. 숫자나 식에 숨겨진 특이한 점은 없는지.
여기까지 해보고도 모르겠으면
그때 해설을 보면 됩니다.
무작정 10분, 20분 버티는 건
방학 시간만 갉아먹어요.
그리고 하나 더 붙이자면,
저는 방학 마지막 주를 꼭 비워두라고 합니다.
새 문제집 들어가지 말고,
그동안 쌓인 약점 종이만 가지고 가리고-테스트하기를 '반복'하는 주간이에요.
이 일주일이 2학기 첫 시험의 체감 난이도를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방학 계획표에서
"몇 권, 몇 회독"이라는 숫자를
지우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이번 여름, 문제집 권수 말고
내 약점 한 장을 남기세요.
그 한 장이 2학기 등급을 바꿉니다.
P.S. 약점 종이는 예쁘게 만들 필요 없습니다.
이면지 한 장이면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