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상담 문의가 확 몰립니다.
그중 제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있어요.
"선생님,
이번 방학 때 킬러랑 n제
좀 왕창 풀려보려고요."
마음은 정말 잘 압니다.
방학이니까
뭔가 어려운 걸 몰아쳐서 해치워야 할 것 같죠.
그런데 저는 이 말을 들으면
반갑기보다 살짝 걱정이 앞섭니다.
매년 이맘때
제일 어려운 문제부터 붙잡았다가,
정작 2학기 내신 시험이나 9월 모의고사에서
오히려 무너지는 아이들을 너무 많이 봐왔거든요.
여름방학 4주는 생각보다 짧습니다.
그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가
2학기 성적을 거의 결정해요.
오늘은 제가 아이들한테 방학 루틴을 짜줄 때
꼭 지키게 하는 세 가지를 풀어보려 합니다.
기본 개념, 다들 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를 풀다 막혀서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답해요.
"어... 이건 그냥 이렇게 푸는 거 아니에요?"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개념을 '무엇'으로만 외우고 '왜'를 모르면,
조금만 비틀어 낸 문제에서 바로 손이 멈춥니다.
그래서 저는 방학 동안
문제 양을 너무 많이 가져가지 말라고 합니다.
대신 한 문제를 풀더라도
내가 왜 여기서 접선을 긋는지,
왜 여기서 치환을 하는지
그 이유를 소리 내어 설명하게 시켜요.
개념서를 처음부터 다시 정독하란 뜻이 아닙니다.
문제를 풀다가 막히는 지점마다
그 개념으로 되돌아가서,
풀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이유를 붙이는 겁니다.
이 훈련을 2주만 해도 아이들 눈빛이 달라집니다.
문제를 '기억'해서 푸는 게 아니라
'읽어서' 풀기 시작하거든요.
방학의 진짜 주인공은
킬러 n제가 아니라 기출입니다.
수능·평가원 기출은
"조건을 보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가
가장 정직하게 훈련되는 교재예요.
'절댓값이 나오면 구간을 나눈다',
'극값 조건이 보이면 도함수 부호를 따진다'
— 이런 반응이 고민 없이 튀어나올 때까지
반복해야 합니다.
여기서 제가 아이들한테 제일 강조하는 규칙.
기출은 답지를 덮고, 최소 10분은 스스로 붙잡아라.
10분을 넘겨도 안 풀리면 그때 답지를 봐도 됩니다.
다만 "아 이렇게 푸는 거구나" 하고 덮지 말고,
내 풀이가 어디서 막혔는지를
답지와 나란히 비교하는 게 핵심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답지는 절대 보지 마라"는 말에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혼자 끝까지 씨름해보는 과정이 8할이라면,
나머지 2할은 잘 만든 해설이 요구하는
'깔끔한 사고의 순서'를 훔쳐오는 데 있거든요.
먼저 스스로,
그다음 답지로 내 풀이를 검사한다.
이 순서만 지키면
답지는 독이 아니라 약이 됩니다.
방학이면
다들 오답노트부터 예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노트를 '만드는' 데 시간을 다 쓰고
정작 '다시 푸는' 건 안 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저는 노트 형식은 아무래도 좋다고 봅니다.
대신 규칙은 딱 하나예요.
맞은 문제는 다시 풀지 말고,
틀렸거나 찜찜했던 문제만 표시해서 반복한다.
한 번 틀린 문제는 2주 뒤에 다시,
또 헷갈리면 한 달 뒤에 또.
완전히 내 것이 될 때까지
그 문제만 계속 돌리는 겁니다.
여기에 하나만 더 붙이자면,
계산 실수도 반드시 따로 모아두세요.
"부호 바뀔 때 자꾸 틀린다",
"치환하고 범위 바꾸는 걸 자주 놓친다"
— 자기가 실수하는 지점은
신기할 만큼 매번 똑같습니다.
그 목록을
시험 직전에 한 번 훑고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4점짜리 하나는 지킵니다.
한 문제를 몇 시간씩 붙잡고 있는 건
성실이 아니라 비효율입니다.
10분 고민하고 안 풀리면 표시해두고,
밥 먹다가, 걷다가
그 문제를 다시 떠올려 보세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굴린 시간이
실력을 만듭니다.
수학은 참 정직한 과목이에요.
당장 이번 방학엔 오르는 게 눈에 안 보여도,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이번 여름은
양보다 '왜'에 시간을 써보길 바랍니다.
고3은 6평 결과에 너무 흔들리지 마세요.
남은 절반이 훨씬 빠르게 지나갑니다.